우주를 들여다 보다

갈릴레이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순간 세계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면서 과거와 다른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에서는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닌 태양이 되었습니다. 사고의 혁명이 일어난 것이죠.

때문에 사람들은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나 주위의 관념을 뒤집는 이론이나 발명, 발견 등을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라고 말하곤 합니다.

#우주의 중심 태양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이후 천문학에서도 기존과 다른 새로운 강력한 도구가 나타나게 되면서 관측 천문학의 0 길이 열리게 되었는데요. 

1608년  망원경이 드디어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호기심 많은 갈릴레이가 이 신기한 물건을 놓칠 리가 없었죠.

 

망원경을 손에 넣은 갈릴레이는 더 나은 성능 개량을 위해 도전과 실험을 지속한 끝에 망원경의 배율을 무려 천 배로 개량시키기  이르렀습니다.

갈릴레이 달 관측

그의 천재성에 대한 놀라움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609년 갈릴레이가 45세 되던 어느 가을밤 그의 망원경은 밤하늘의

달을 향했습니다.  망원경으로 실제 달의 모습을 확인한 갈릴레이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정말무결한 구의 모습을 한 달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가 본 달에는 울퉁불퉁한 곰보 자국이 수도 없이 나 있었고 지구처럼 산과 계곡도 존재하여 씁니다. 

 

 

 

 

이것은 하늘과 땅이라는 2분 법적인 사고방식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고 하늘의 세상인 달도 땅과 그 모습이 그리 다르지 않다 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서 새로운 과학사의 지평을 여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에 경위를 느끼기 시작한 갈릴레이는 천체망원경으로 하늘 곳곳을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1610년 1월 7일 이번에는 목성을 겨누었습니다.  갈릴레이는 목성 옆에서 반짝이는 세계의 벼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보니 별이 모두 4개로 불어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몇 개월 동안 지속해온 관측을 통해 갈릴레이는 이 작은 별들이 목성 주변을 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움과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태양 중심의 새로운 우주론 체계 등장

놀랍게도 막연히 이론적으로만 알려져 있던 태양 중심임을 주장하는 지동설의 모형이 실제로 하늘의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죠.

이로써 천동설 천문학이 끝이 나고태양 중심의 새로운 우주론 체계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갈릴레이의 주장은 교회의 반발을 사게 되고 성직자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고 맙니다.

교황청이 갈릴레이에게 보낸 성직자들은 친히 그런 관찰을 원하셨다면 인간에게 눈 대신 망원경을 주셨을 것이라며 망원경 보기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이로써 결국 갈릴레이의 주지은 인정받지 못하고 갈릴레이는 종교 재판에 의해 가택연금 형의 처해지게 됩니다.

 

수많은 별들로 이루어진 은하수 양 쪽에 혹이 나 있는 듯한 이상한 타원형이 존재하는 토성, 불규칙한 달의 표면 4개의 위성이 존재하는 목성, 이 같은 사실을 주장한 갈릴레이는 근데 천문학에서 오늘날 현대 천문학으로 발전하는 길목에서 관측 천문학이라는 새로운 장을 연 인물입니다.

 

특히 목성의 4개 위성의 공전 모습을 보고 작은 태양계를 상상하고 실제로 오늘날의 태양계 이론의 토대를 이룩한 점은 갈릴레이 해 가장 훌륭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죠. 

이는 또한 갈릴레이가 오늘날까지 위대한 창문 학자로 존경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코페르니쿠스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혁명적인 주장을 한 경우 바로 코페르니쿠스입니다.

 

우주 속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에 관한 역사는 곧 우주의 역사 이기도 합니다. 

 

기원전 3세기에 아리스타르코스라는 천재적인 인물은 우주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정확히 말하고 행성들의 배치를 최초로
그려냈습니다.
하지만 이후 1800년 동안 인류 중 누구도 이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죠. 천동설 종교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오랫동안 진리로 여겨졌던 탓에 사람들은 여전히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있으며 인간은 우주의 중심적인 존재라는 대단히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우주관을 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지구

잘못된 우주관을 뒤엎은 사람은 무려 1800년 많이 16세기가 되어서야 나타났습니다. 그는 바로 지동설을 들고 나온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시대의 대세를 거스르는 영웅이죠, 하지만 당시 그는 자신의 태양 중심 우주론을 담은 첫 저서 '소론을 완성하고 출판하지 않았습니다.

획기적인 학설을 담은 베스트셀러를 쓰고도 세상에 내놓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지구가 우주 중앙에 딱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불덩어리 태양 둘레를 돌고 있는 일개의 행성에 지나지 않는다는 혁명적인 주장을 담은 코페르니쿠스의  추측은 입소문을 타고 번져 나갔습니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


오랫동안 진리로 미더운 천동설을 완전히 뒤엎은 것이었으니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이 거센 비판과 반발을 받은 것은 당연했죠.
심지어 한 시대의 지성인이 이었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 조차도 지동설은 명백한 거짓이라며 코페르니쿠스를 비난했으니 말이죠.

게다가 거대한 크기와 질량을 가진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우주공간을 돈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수용되기 어려웠고 당시에는 무거운 물체가 왜 지구 중심점으로 떨어지는가를 설명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경험론 철학자인 베이컨도 지동설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1636년여 설립된 하버드 대학에서도 수십 년간 천동설 만을 가르쳤습니다. 결국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담은 책이 정식으로 출판된 것은 그가 '소론'
을 완성하고 30년의 세월이 흐른 되었죠.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하는 바를 정리해 보면 이러했습니다.
바로 각각의 천체들은 재각기 고유한 무게를 갖고 있으며 이 무거운 천체들은 자체의 중심으로 향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죠. 이 생각은 궁극적으로 만유인력에 이르게 되지만 당시의 코페르니쿠스는 이러한 문제에 답할만한 물리학을 갖고 있지 못했기에 그다음 뉴턴이 출연하기까지 200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중세 우주관을 패기 시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만약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근대 과학은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중심에서 지구를 치워 버린 1543년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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